A Bowl of Rosy Mirrors. 장미빛 거울 한 그릇 한 그릇의 수프가 나를 비추고 이끌 수 있다면 어떨까요? 지난 주말 아침, 운동을 마치고 벗들과 둘러앉아 나눠 마신 차 한 잔에서 출발하는 이야기입니다. 투명했던 그날의 차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진한 분홍 냄새가 났어요. 잔 속에 웅크리고 있던 그것이 제 코로 달려들며 이렇게 외치는 것 같았지요 “네가 보고 있는 색이 나의 전부가 아니야!” 그리고 그날 저녁, 나도 모르게 분홍색 니트를 골라 입었어요. 아침의 분홍 외침이 저녁의 나에게 분홍색 니트를 입혔던 거예요. 형태도 없는 냄새가 내 손을 당기고 깨우고 이끌다니요? 그날 이후 프로비전의 계절 메뉴인 핑크 수프를 바라볼 때마다 거울 처럼 들여다보게 됩니다. 이 부드러운 수프의 뒤에서도 무언가 외치고 있거든요. 말없이 감싸는 것, 보이지 않지만 분명 나를 이끄는 것, 핑크에 깊은 땅 한 줌이 녹아 스며든 것, 색이 되고, 때로는 다음 날 나의 옷깃으로 드러나는 것들 말이에요. 그 냄새를 쫓아 핑크 수프의 고향, 프로비전의 빈 냄비를 마주합니다. 이 수프는 겨울과 봄 사이, 감자와 비트 사이의 앙상블입니다. 비트 냄새를 맡아본 적 있으신가요? 한 조각 쥐고 깊이 들이마시면, 사냥꾼처럼 거침없던 어린 나의 냄새가 나요. 야생의 빛깔과 흙 내음을 간직한 비트와 단단한 감자를 손질하는 일은 마치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깊은 숲을 길들이는 것 같고요. 그렇게 모은 냄새와 색을 냄비 안으로 우르르 잡아들여, 날뛰는 비트 향이 포근한 감자 속으로 숨어들 때까지 뜨겁게 끓입니다. 그리고 버터 한 조각에 기대어 노곤해진 재료들을 소용돌이치게 하면 뿌연 사이로 붉게 솟구치고 잔뜩 뒤집히고 긴장하고 울컥하다, 순간 장미빛으로 가라앉습니다. 둥그런 볼에 담긴 수프는 솜털 같이 포근한 얼굴이지만, 들여다보면 비바람을 견딘 늪과 닮아보입니다. 여기까지 따라온 이상 나 역시 고정된 채로 머물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지요. 오늘의 핑크 수프 속에선 흙투성이 장밋빛 길을 걷고 있는 내가 보일지도 모르겠어요. 향기와 색이 알려준 방향, 두려움 없는 핑크의 방향으로요. 당신의 거울에서는 무엇이 비치나요? 보이는 그대로인가요, 전혀 다른가요? 당신은 지금 어느 쪽으로 걷고 있나요?